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튀르키예-아르메니아 관계 (문단 편집) === 20세기 === 1923년 소련은 [[로잔 조약]]으로 [[카르스]] 일대를 터키 측에 반환하면서 [[아라라트 산]]을 튀르키예 영토로 공식 인정했다. 아라라트 산 동쪽을 터키 공화국 측에 양도한데는 아르메니아 민족주의를 견제하려는 목적도 없지 않았다고 주장된다. 아르메니아인들에겐 튀르키예 동북부 지역의 상당수 영토가 옛 아르메니아 땅이기에 되찾을 땅으로 여긴다. 옛 아르메니아 왕국 수도인 [[아니]]를 비롯하여 성지인 [[아라라트 산]]과 많은 땅을 튀르키예 안에 가지고 있기에 영토를 찾지 못하면 그 안에 남은 조상들의 문화재나 유물들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소련은 나토 가입국인 터키와 갈등을 자제하였고, 아르메니아인들의 기대는 희망 사항에 그치고 말았다. 다만 현실적으로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라는 점에서야 마찬가지지만 관리가 어려웠던 한국과는 달리 당장 튀르키예는 아나톨리아 내륙과 동부 조금으로만 들어가도 당장 백년 전까지만 해도 잘만 돌아가다가 대학살 이후 텅텅 비어 방치와 훼손, 풍화 속에 썩어 무너져 가는 옛 아르메니아 교회, 수도원, 주택 같은 유물들이 카이세리 부터 카르스, 디야바키르, 반 지방 까지 쫙 널려 있기에 사회 전반에 걸쳐 반튀르키예 감정이 훨씬 심한 편이다. 사실 문화, 사회사적 측면에서 아르메니아 민족, 문화 공동체의 역사의 중심지는 현 아르메니아 본토 지역이 아닌 [[아니]]가 위치한 옛 바스부라간[* Vaspurakan, 서부 아르메니아어 발음으로는 바스푸라칸] 일대, 즉 현대 튀르키예의 동부 아나톨리아 지역 일대였으며, 관련 역사적 유물과 문화적 활동의 중심지도 대학살로 쓸려나간 아나톨리아 동북부와 내륙지방이었다. 그 동네의 정치적 지배 세력은 로마/동로마와 페르시아, 이슬람 제국, 몽골, 셀주크/오스만 튀르크, 러시아 사이에 왔다갔다 했다 한들 해당 지방에서 아르메니아인이 계속 살아 왔으며 문화적,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해 왔던 지역들이 100년 만에 아르메니아인들의 존재 자체가 '''멸균실'''이라 해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청소당해 버리고, 그나마 남아 있는, 문화예술사적 관점에서 연구 보존되어야 할 유물들은 죄다 튀르키예군 사격 연습 타겟으로 쓰인다든지, 인근 농부들의 헛간 재료로 무너지고 있다든지 하는 꼴을 수십 년간 눈 뜨고 지켜봐야 했으니 아르메니아인들 입장에서 복창이 뒤집히는 건 당연지사.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